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속 심층분석 / 2기 #4. 그리고 유이가하마 유이는 선언한다.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속 심층분석 / 2기 #4. 그리고 유이가하마 유이는 선언한다.

2017. 3. 6. 23:52애니메이션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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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2기 4화

 

그리고, 유이가하마 유이는 선언한다.

 

작중 인물들의 심리를 중심으로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의 초반 작중 전개에는 흔한 러브코미디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함축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 또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좀처럼 이해하기 난해한 서술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일일이 상세하게 이해하거나 생각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저 재미있게 본다면 그것으로도 족할 것이다. 다만, 이글에서는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도대체 저런 식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동조'란 어떤 특정인 또는 집단으로부터 실제적·가상적 압력을 받아 자신의 행동 및 의견을 바꾸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동조의 경향은 솔로몬 애쉬의 실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있으며, 그 사과를 보여주면서 색깔을 물어본다는 가정을 해보자. 이 때, 당신에게 질문을 한다면, 당연히 사과의 색을 '빨갛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대답하기에 앞서 모든 사람이 그 사과에 대해 '검다'라고 말했다면, 당신은 당당하게 그 사과에 대해 빨갛다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자신 혼자만 빨갛다라고 말할게 확신시 되는 상황이 주어지면, 아무리 자신의 견해가 맞고 다른 이들의 의견이 틀렸을지라도 당신은 틀린 다수의 의견을 쫓아갈 것이다. 물론 이 예시가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상 거의 드러맞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조는 집단의 압력에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은 집단의 선택을 따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집단의 선택을 따르지 않게 되면 그로부터 떨어져 미움을 받거나 외톨이가 될까봐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집단의 선택을 따르지 않은 것에 따른 불이익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선택이 전체의 선택과 반목하게 되면 자연스레 동조를 선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이 올바르다라는 생각, 그리고 이 올바름을 통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작중의 주인공 히키가야 하치만은 이러한 집단의 선택으로 인한 동조에 영향을 받았다. 학기 초, 교통사고로 인해 출석을 할 수 없었던 하치만은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만한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학기 초에 이런식으로 출석을 하지 않는 학생에 대한 동급생들의 인식도 어쩐지 모르게 좋지만도 않을 것 같다. 어찌됐든 이러한 상황에서 하치만에게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되기 시작하면 말을 걸려던 사람조차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말을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동조하지 못하는 인간은 금새 외톨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더불어 작중에서는 위의 2번째 장면처럼 하치만이 과거 인간관계에 실패한 사례들을 종종 회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치만이 그러한 장기간의 시간에 따른 경험의 반복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 일정한 틀을 규정했을 것은 누구나가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오히려 이것이 트라우마적 요소가 되어 그를 더욱 찌질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위의 4번째 장면은 유키노가 하치만에게 모든 인간이 자신을 싫어하거나 기피한다고 생각하면 자의식 과잉이라고 반론하는 부분이다. 이미 작중의 전개가 많이 진행된 상황에서 하치만은 더 이상 주변인물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가 아니게 되었고, 또 위의 3번째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하야토조차도 오리모토 일행에게 그런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 대해 하치만으로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애니메이션 상에서는 스토리 때문에 봉사부의 위주로 장면이 연출되어 있을뿐이지, 실질적으로 하치만이 봉사부에 있는 시간보다 교실이나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위의 첫번째 장면만 봐도 함께 온 일행과 떨어져 혼자 있는 것이 더 익숙한 하치만이기 때문이다. 하치만이 봉사부에서의 시간을 제외한다면 거의 외톨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은 사실상 자명하기 때문에, 하루 중에서 대부분 홀로 고독하게 보는 하치만에게 '너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야'와 같은 말을 한들, 그에게 얼마나 와닿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루노는 계속해서 유키노를 시험하려는 듯한, 또는 뭔가를 기대하면서 자극하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이것은 비단 위에 언급된 장면에서는 그렇지는 않고, 오히려 그녀가 등장했던 이후로 계속해서 나타나는 태도이다. 하루노가 동생인 유키노에게 어째서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인지는 솔직히 필자 역시도 전혀 모르겠다. 작중의 언급이 없으니 그저 짐작 정도만 가능한데, 사실 필자는 그런 짐작조차 잘 되질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고찰해보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기에 대해 조금 생각해본다면, 하루노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그녀의 태도가 연관성이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특성에 귀인시키는 것은 '대응 추리'라고 하는데, 이는 상당히 흔하게 일어나는 추론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A가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면서 한 좌석에 앉아있고, 이 때 A의 옆에 한 노인이 다가와 그의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음에도 A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계속 그대로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A를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기본조차 안 된 인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행동은 곧 속성이나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대응 추리는 '기본적 귀인오류'의 범주에 있는 것인데, 사회적 행동 및 현상에 대해 원인을 기술 또는 설명함에 있어서 상황 또는 환경의 영향에 비하여 성격이나 기질적인 요인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일반적인 경향을 말한다. 전술한 사례에서 A가 다리를 다쳐서 비켜주지 못했거나, 아니면 졸고 있어서 노약자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항상 자리를 양보했었지만 하필 그 때만큼은 너무 피곤해서 양보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제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인 행동으로 A의 속성이 비도덕적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바로 기본적 귀인오류에 해당한다.

 이러한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에 관하여, 리처드 라삐에르(1933)가 현시대보다도 인종 차별에 대한 편견이 더욱 공공연했던 시기에 실시한 고전적인 연구가 있다. 당시의 미국에는 아시아인, 히스패닉,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이 공중 화장실이나 식당 또는 호텔숙박시설 등을 이용하는데 상당히 제한적이었다고 한다. 라삐에르는 128개의 호텔과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가게에 중국인이 온다면 숙식을 제공하겠냐는 질문을 실시했는데, 90% 이상의 가게들이 거부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질문을 실시한 가게들을 대상으로 젊은 중국인 부부가 실제로 방문했을 때에는 단 한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숙식을 받아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어떤 개인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그의 행동은 그다지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신념과 행동의 연관성이 있다는 실험은 많이 있으며, 그 중의 하나가 폴 헤어(1986)의 실험이다. 폴 헤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고 주입시킨 그룹 A와, 선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고 주입시킨 그룹 B를 나누어 설정하고,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C라는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며 소개시켜 준다. A그룹의 사람들은 이미 부정적인 사람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비교하여 다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선하게 인식할 것이고, 반대로 B그룹의 사람들은 타인을 상대적으로 악하게 생각할 것이란 가설이었다. 그리고 이 실험에서는 가설과 일치하는 결과가 나타났고, 폴 헤어는 상대적으로 애매한 맥락이 태도와 기대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결론을 냈다.

 더불어 캐롤 드웨크(1999)는 개인의 행동과 그 속성을 정의하는 영속성과 관련하여 '암묵적 이론'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위의 폴 헤어의 실험에 등장한 두 그룹을 대입해서 설명하자면, 긍정적인 개념을 주입해 상대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지닌 B그룹은 인지한 대상의 부정적인 속성을 고려하여 한계를 설정하고 또 되도록이면 그러한 것들로부터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부정적인 개념을 주입해 상대적으로 긍정적 인식을 지닌 A그룹은 대상의 긍정적인 속성을 감안하여 더욱 도전적 태도를 가지고 접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A그룹은 선택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크고, 반대로 B그룹은 선택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적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에게 있어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으로, 특히 성장 및 배움의 시기에 있는 10대들에게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앞서 세 가지 실험의 결과를 개인적인 견해로 종합하자면, 기본적으로 인간의 태도나 신념 및 가치관 등과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다만, 양자간의 연관성이 지어지려면 포괄적이고 큰 테두리의 개념 및 범주 내에서 상당한 시간을 들인 장기간의 것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루노가 유키노에게 지속적으로 위와 유사한 행동을 취한다는 점에서 그녀가 가진 어떠한 신념과 반복되는 행동 사이에는 상당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짐작만 가능하다. 다만, 2기 3화에서 하야토는 하치만에게 하루노가 관심이 없는 것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며, 좋아하는 것을 너무 감싸고 돌아서 죽이든가, 싫어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해서 죽이든가 둘 중에 하나만 한다고 말한다. 작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하루노를 지켜봐왔던 하야토의 증언을 감안한다면 하루노는 그저 약한 동생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단순한 악동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물론 하루노의 의도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애니메이션화 되지 않은 이후 부분의 원작 소설에서 언급될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결론적으로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로 귀결된다)

 

 

 

 누가봐도 유키노는 하루노에게 자극을 받고 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유키노는 자신이 믿지 않고 또 부정하고 싶은 것, 즉 하루노의 말로 인해 자신에게 닥친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태도변화를 취했다. 여기서 유키노는 '나는 독자적이고 강건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이는 가치관이나 심리를 내면화하여 자기 정당화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이다.

 하루노가 학생회장을 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유키노는 봉사부에서 은둔적인 생활을 했을뿐이며 문화제 실행위원회에서조차도 하루노가 했었던 문화제 실행위원장을 하지 않았다. 그다지 학생회장이라는 위치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이던 유키노가 학생회장이 되겠다고 선언한 점은 비록 다른 부조화적인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싫은 것을 좋다고 말하며 자신의 의지가 부조화스럽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부분에서 내심으로 인지한 것과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인지 부조화'가 문제시 되는데, 이것은 자아개념이 위협받게 되는 상황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계속해서 '너는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오는 하루노와 마주하는 유키노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 것인지 굉장히 고심이 되는 일이며, 자신의 존재감 자체를 부정당할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에 놓인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과는 달리 정직하고 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서도 인지 부조화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공교롭게도 유키노는 작중에서 꽤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말하는데다가 그녀가 태어난 집안도 보통 가정과는 다른 상류층에 속하고 있다.

 때마침 '잇시키 이로하의 의뢰'라는 정당화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자신은 학생회장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유키노의 논지에 얼마만큼의 신빙성이 존재할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이로하의 의뢰가 없었다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2기 3화에서 하루노가 하치만에게 동생이 학생회장을 하려 들지는 않았냐며 묻는 장면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령 이로하의 의뢰가 없었더라도 추후에 하루노가 반드시 무슨 짓이든 꾸밀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한편 정당화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더라도, 하루노의 말을 애써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키노가 자신의 정당성이나 존재감을 좀 더 어필하려면 자기가 취한 행동에 대해 설명하고, 그 말대로 행동하면서 언행일치를 이루려는 노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중에서 유키노의 정당화가 부정되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함께 봉사부 활동을 해왔던 하치만에게서 찾을 수 있다. 봉사부에 처음 들어왔던 하치만은 유키노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해 철저히 부정당했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히려 유키노가 그러한 하치만의 가치관을 높이 평가하는 순간이 오게 되고, 개인적으로는 문화제가 끝났을 시점이 가장 절정에 다다랐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유키노는 의뢰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하치만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그가 했던 말들을 따라하기도 하는 등의 태도변화를 보여준다. 유키노를 관찰하는 하루노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동경하는 듯한 동생의 부적절한 정당화를 좀처럼 납득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며, 2기 11화에서는 하야토가, 2기 12화에서는 하루노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러한 부분을 명백하게 확인시켜 준다. 원작 소설 1권에서 유키노가 하치만이 했던 '출처는 나'라는 말을 똑같이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미 처음부터 유키노는 하치만에게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다만, 이 때 당시에는 약간 애매할 수도 있는 부분이어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원작 소설 10~11권,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2기 11~12화에 해당한다.

 인지 부조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보상'의 개념인데, 일반적으로 부조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미미하고 오히려 손해를 입고 잃을 것이 큰 경우에 인지 부조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작중에서 언급이 되어 있듯이, 유키노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는 외국에서 다닌데다가, 고등학교는 따로 살기 시작한 유키노가 어머니를 설득해서 집을 나왔을 때에는 아마도 자신만의 꿈이나 비전을 제시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하치만이 1권에서 꿈은 자기자신을 배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듯이, 유키노가 얻을 수 있는 보상, 즉 앞으로의 미래가 유키노의 생각대로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반면에 아슬아슬한 외다무다리를 타듯 집안과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유키노가 자신의 의지를 부정당할 위험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크다는 점에서 인지 부조화는 상당히 예견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지 부조화는 개인적 책임감을 느끼는 정도가 크고, 자신의 행위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때 등에서 크게 나타난다. 유키노는 전자의 경우로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의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피해가 크거나 책임감이 클수록 부조화가 커지고 또 부조화가 커질수록 태도변화가 커지게 되는데, 유키노에게 있어서는 자존감을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가장 큰 피해로서 인식될 가능성이 크며, 이러한 부분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어찌됐든 전술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존감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깊은 자아관여가 일어나며, 무엇보다도 환경과 상황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유키노가 하루노를 따라하네? 또는 하치만을 따라하네?'가 아니라 유키노라는 개인이 처한 어쩔 수 없는 그 상황에 대해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 부분도 앞서서 상술한 자기 정당화에서 비롯된 인지 부조화와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미리 상담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학생회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유키노에 자극을 받은 유이가하마 유이가 자신도 그녀를 따라 학생회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작중에서 드러난 표면적인 이유는 봉사부를 존속시키기 위해 유키노를 학생회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사실 위에서 서술한 인지 부조화는 상황이 부정적일뿐만 아니라 강력한 불가피성을 지닐 때에도 강하게 나타난다. 유키노가 학생회장이 되어 학생회에 집중한 나머지 봉사부에 소홀해져 부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을 염려한 유이가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학생회장 후보로서 나서려 하는 것은 그러한 상황의 불쾌함을 최소화시킴으로써 최대한 만족스러운 상황으로 만들려고 하는 점에서 비롯된다. 봉사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대신 학생회장이 되어야 하며, 자신과 같은 덜렁이는 어느정도 이해해줄 것이라며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이러한 선택을 함으로써 최소한 상황의 부정적인 측면은 상대적으로 누그러질 것이란 전망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인지부조화의 영향 때문에 그 타당성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당히 그럴싸하게 와닿아지게 된다.

 만약 불가피성, 즉 유키노가 학생회장이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음 화인 2기 5화에서 하치만의 독백에서 언급되듯이 봉사부 3인이 학생회 임원들이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는 상황 또는 사건에 대해 또 거기서 긍정적인 부분이 강조되고 있다. 다만 봉사부로서 의뢰를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의뢰를 부활동으로서 반드시 해결해나가야만 한다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 잠정적으로 합의되어 있는 상황에서 유키노가 잇시키 이로하를 낙선시키기 위해 학생회장이 되는 것은 정당했다라고 적응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봉사부가 취해야 할 사고는 학생회장이 되는지에 대한 여부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지니고 있다라는 그 느낌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취한 행동에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더욱 큰 부조화를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본문에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신뢰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명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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