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심층분석 / 2기 #3. 늑대와 메워지지 않는 간극

늑대와 향신료 심층분석 / 2기 #3. 늑대와 메워지지 않는 간극

2017. 2. 17. 21:59애니메이션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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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2기 3화

 

늑대와 메워지지 않는 간극

 

작중의 설정 중심으로

 

 

 늑대와 향신료는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경제 판타지라는 명칭이 종종 붙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되며, 작중에 등장하는 경제적 요소는 부가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로렌스와 호로 사이에서 사랑의 밀당?이 오가는 것이 더욱 주된 요소이며, 이러한 점에서는 로맨스라는 장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됐든 이 글에서는 로렌스의 행적을 중심으로,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나 배경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또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사진은 늑대와 향신료 소설판에서 캡쳐한 것이다. 이 것을 보면 크멜슨의 주위에는 프로아니아, 트레니 왕국이라는 국가의 이름이 보인다. 현대 국가에서는 특정 국가의 영토 내부의 어디를 가든지 그 국가의 법이 가장 우선적으로 적용되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대한민국의 헌법, 민법, 형법, 상법 등이 적용된다는 소리다. 그러나 중세시대에서는 도시법(Stadtrecht)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특이하게도 도시가 속한 상위 개념인 국가의 법보다도 우선적으로 적용되는데, 이는 현대 사회의 법체계와는 우선순위가 반대로 적용되어 있는 모습이다.

 두 번째 장면은 불가피하게 1화에서 캡쳐한 사진이다. 로렌스와 호로가 뤼빈하이겐을 떠나 도착한 곳은 크멜슨이라는 도시인데, 겨울 대시장이라는 단어가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상업이 굉장히 발달해 있을 것이라 추측이 가능하다.

 중세 유럽이라고 하면, 중학교 시절 사회 과목에서 배웠던 장원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게 만든다(Stadtluft macht frei[각주:1])와 대비하여 장원의 공기는 부자유롭게 만든다(Hofluft macht unfrei)도 인상깊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물론 그 내용 중에는 도시라는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그런 장원과는 전혀 다른 중세도시는 원래 도시를 소유한 봉건 영주, 즉 군주가 운영하던 것이 상업의 발달이 지속되면서 자주적·자치적인 도시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면서 '도시'라는 틀을 기반으로 번영하였고, 번영한 도시들은 일반적인 마을이나 영토와는 달리 국가 내에서도 독립적·특수적인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로렌스는 마르크의 제자인 란트로부터 로엔 상업 조합(길드; Gilde) 크멜슨 지부에서 아마티가 로렌스를 상대로 계약의 나이프를 들이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허둥지둥 상관으로 달려간 로렌스는 아마티로부터 호로에 대한 구혼과 서약의 맹세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아마티는 로렌스에 대해 호로가 지고 있는 빚을 자신이 모두 변제해 보이겠다고도 선언한다. 계약의 나이프를 들이대는 아마티는 로렌스에게 호로의 후견인으로서 이 계약, 아니 승부에 승낙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아마티가 들고 있는 양피지가 눈에 띈다. 중세 시대에도 당연히 계약을 위한 문서가 존재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것처럼 일정한 양식이나 특정 요소를 반드시 기재한다든가의 공통점 또는 양식이 별도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통은 계약을 하는 당사자 간에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임의로 작성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크멜슨이 상업으로 발달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세 독일의 쾰른이라는 도시를 비추어 볼 수 있다. 쾰른 역시 상업도시로서 발전한 곳인데, 이곳에서는 부동산 거래의 안전을 위해 증거보전으로서 증서가 매우 발달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사상 최초의 부동산 등기제도라고도 알려져 있는 슈라인제도(Kolner Schreinsurkunde)로, 이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슈라인문서이다. 슈라인문서는 단순한 철을 의미하는 슈라인스칼(Schreinskalde)과 장부를 의미하는 슈라인스부흐(Schreinsbuch)가 있다. 쾰른시에서는 자치단체를 구성하는 12개의 각 시구 개별공동체를 중심으로 심판인에 의하여 슈라인문서를 관리했다고 한다. 슈라인문서는 부동산 등기뿐만 아니라 법률행위나 각종 상거래와 관한 계약 등을 기록 및 증빙하는 증서로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마티가 들고 있는 양피지는 과거 중세시대에 존재했던 슈라인문서를 기반으로 한 요소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생각되며, 늑대와 향신료 1권 또는 1기 3화에서 로렌스가 제렌과 계약을 맺으면서 공증을 한 양피지를 서로 들고 있던 것도 같은 맥락의 것이다.

 

 

 

 일정 부분의 땅이나 건물, 즉 부동산을 구입해 상점을 차리는 것은 지금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슈라인문서를 바탕으로 등기된 자신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정당하게 장사를 하는 것이다. 마르크가 가진 점포와 더불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건너편에도 다른 이의 상점이 보인다. 게다가 이러한 상점들은 일정한 구역에 분포되어 있다. 작중에서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과 반듯한 모양으로 상점이 묘사되어 있다. 만약 저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각 점포 주인의 자치에 맡긴다면 당연히 저런 모양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중세도시에서 도시를 관리하는 군주의 권리 중에 하나가 부르크그라프(Burggraf)인데, 이것은 철거권(Raumungsrecht) 또는 장대권(Stangenrecht)라고 불리는 것으로, 말을 타고 창 또는 장대를 가로로 들고는 거리를 다니면서 창이나 장대에 부딪치거나 걸리는 건물을 일제히 철거시키는 것을 말한다. 원래 이것은 군대가 이동할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상인간에 과도한 점유 싸움을 막기 위한 재판적인 성격으로서 사용된 권리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도시 내의 시장은 규율이 잡힌 반듯한 모양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로렌스가 마르크를 통해 크멜슨이나 아마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장면이다. 마르크의 제자인 란트가 마을 참사회의 게시판에 가서 아마티의 과세대장을 확인하는 모습인데, 이런 것을 확인하는데에 잔심부름꾼인 란트가 가는 것, 또는 크멜슨의 사정이나 지리를 잘 아는 마르크나 란트가 알아보는 것이 지극히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도 로렌스가 이러한 부분을 알아보는 것에는 마르크나 란트에 비해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증명하는 것이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 도시법(1297)인데, 이것은 1295년 국왕 아돌프가 프랑크푸르트시가 향유하는 자유와 권리를 인근 소도시 바일부르크(Weilburg)에 수여했을 때, 프랑크푸르트시가 이것을 성문화시킨 것을 말한다. 프랑크푸르트 도시법에서는 여러 분야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지만 특히나 시외시민, 내지시민에 관련하여 그 권리와 의무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외지시민에 해당하는 로렌스가 크멜슨의 참사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내용은 마르크나 란트에 비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비추어 볼 때, 로렌스가 한 때 함께 행상을 했던 마르크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단순히 거주민에게 지리를 묻는 느낌의 것만으로 이해하기는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다.

 

 

 

 늑대와 향신료의 원작 소설을 읽든,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보든 작중에서는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많이 등장한다. 특히나 무속 신앙 또는 토속 신앙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교회의 이야기는 작중의 처음부터 거의 끝부분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중세 유럽에는 황제 등이 발하는 칙령이나 도시가 제정한 도시법뿐만 아니라 교회법도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광활한 유럽 대륙의 1/3이 교회의 소유라고 전해질 정도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교, 즉 교회의 영향력은 봉건 영주에 달하거나 그 이상으로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교회법은 근본적으로 성서를 그 근원으로 하는데, 여기에 더불어 교황이 발하는 교황령도 존재한다. 교회법이나 교황령은 성직자나 성사(聖事)뿐만 아니라 신분(인종)이나 채권, 쟁송 등에도 기본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단순히 정신적 결집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유럽 대륙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있어서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이교도들을 무조건적으로 핍박만 한 것은 아니다. 늑대와 향신료 작중에는 수많은 이교도의 축제가 존재하며, 온천으로 유명한 뇨히라 역시도 이교도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성직자들이 온천을 즐기기 위해 몰래 가는 곳이라는 언급이 있을 정도다. 아마도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이익을 침해하는 이교도의 행위만이 교회의 배척 대상이 되었을 것이란 점은 누구나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 본문에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신뢰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명기합니다.

 

 

  1. Stadtluft macht frei가 맞는 표현이지만, Stadtluft machtfrei로 표기된 곳도 가끔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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