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과고교의 열등생 심층분석 / #16. 구교전 편 IX

마법과고교의 열등생 심층분석 / #16. 구교전 편 IX

2017. 3. 5. 11:18애니메이션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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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과고교의 열등생 16화

 

구교전 편 9

 

타츠야의 강함과 연계된 부분의 개연성을 중심으로

 

 

 마법과고교의 열등생은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작품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었던 애니메이션이기도 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여타의 것들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봐야한다 생각하는 것이 필자의 입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가질 않는 부분, 즉 개연성이 부족했던 부분 위주로 짚어보고자 한다.

 

 

 

 

 제1고교에 재학중이며 작중의 주인공인 시바 타츠야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구교전의 종목 중 하나인 모놀리스 코드에 출장하게 된다. 모놀리스 코드에 대해 별도로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어찌됐든 이 종목에 출전하면 공격의 강도를 제한한 전투가 이루어진다는 것만큼은 언급해두고 싶다. 다시 말해 작중에서 사용되는 '마법'이라는 것을 이용한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타츠야는 이 종목에 출전하여 단숨에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제3고교의 이치죠 마사키와 카디널 죠우지를 상대로 버거워 하는 듯한 독백을 한다.

 작중에서 절대적인 강자라고 해도 무방한 타츠야가 마사키라는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주인공 본인이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또는 항상 일관되게 겸손한 자세를 보인 그의 성격 탓이라고 해도 사실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작품과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타츠야를 사실상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독자나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전에 보여주는 모습과 더불어 추후에 보이게 될 모습을 보게 된다면, 도대체 왜 그가 이런식으로 긴장을 해야 했던 것인지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가 지닌 능력은 정말이지 그냥 사기라고 말해도 부족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작중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무리가 없는 일관된 전개를 보여주지만, 타츠야 본인이 지닌 능력은 작중의 일관된 개연성을 파괴하는 듯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갈등이란 칡나무 덩굴(葛) 등나무 덩굴(藤)이 서로 얽혔다는 의미로, 작품 속에서 인물 또는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말한다. 갈등이 유발되고 그 갈등을 다시 해소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작품을 감상하는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다만 이 작품은 그러한 갈등의 요소가 상당히 미온적으로 언급된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작중의 타츠야가 그다지 표정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인 점, 주인공 본인이나 주변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타츠야가 항상 무난하게 해결해나간다는 점,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타츠야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지도 않다는 점 등이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오히려 타츠야를 중심으로 한 편안한 일상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분위기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글에서는 타츠야가 가진 힘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요소를 중점으로 하고 있으므로, 더불어 개인과 집단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 작중의 타츠야가 가족인 요츠바 가문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 상에서는 그 이유의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데다가 마찰을 보여주는 장면의 비중도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해도 무방할 정도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또한 타츠야의 내적 갈등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미유키와의 관계 등도 마찬가지이다.

 작중에서 타츠야의 힘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외적 갈등은 상당히 여러가지 요소로 나타난다. 첫째로 타츠야와 다른 개인의 갈등인데, 단편적으로 16화만 봐도 마사키와의 대립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로 타츠야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사회적 제도나 윤리 및 관습 사이의 갈등인데, 이것은 작중 초반 타츠야가 가진 힘이 마법사 사회에서 측정하는 방식과는 알맞지 않다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로 타츠야와 운명의 갈등으로, 애니메이션 후반부에 미유키가 요츠바 마야와 대화하면서 타츠야가 일방적으로 서약을 파기할 수 없다라고 나오는데, 이는 타츠야의 인생에서 미유키와 얽혀여만 한다는 모종의 제약을 암시하는 운명적 갈등이다. 각 요소에 해당하는 부분들은 이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며, 원작 소설의 내용까지 도입한다면 상당히 많겠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마찬가지로 논외에 붙이겠다.

 어찌됐든 이러한 갈등의 요소들은 대부분 타츠야가 가진 힘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작중의 내용과 관련한 부분을 설명하기에 앞서 일반적인 주인공들이 가진 힘의 설정을 일부 정리해보았다.

 

 ① 그냥 사기꾼인 경우(넘사벽)

 ② 주인공이 특정한 계열이나 분야에서만 뛰어난 능력치를 보여주는 경우

 ③ 주인공이 가늠할 수 없는 잠재력을 보유한 경우

 ④ 별다른 힘이 없는 주인공이 절대적으로 강한 동료에게 의지하면서 간교한 술책을 병행하는 경우

 ⑤ ④의 경우에서 주인공이 절대적으로 강한 주변 동료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우

 (이 외에도 여러 유형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매우 대표적이면서 생각나는 것들로만 서술해보았다)

 

 아마도 ③의 경우가 고전적인 왕도로 생각되는데, ③의 경우에는 점진적인 강함을 바탕으로 등장하는 상대를 통해서 점점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한 계단씩 올라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내 나감으로 인해 완급 조절을 바탕으로 팽팽한 긴장함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긴장감 조성은 독자 또는 시청자에게 그만큼 희열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수년째 ③보다는 ① 또는 ②를 기반으로 하는 설정의 작품들이 무수히 등장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누가봐도 ①이라는 사실에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속칭 '먼치킨물'이라고도 불리는 ①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런 주인공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①의 경우에는 주인공보다 약한 주변의 동료를 약점으로 삼는다던가, 아니면 더욱 획기적으로 주인공을 뛰어넘은 요소를 추후에 도입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는 ①이라는 설정과는 모순되기 때문에 스스로 설정한 논리를 말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치죠 마사키는 그런 후자의 우(愚)를 범하는 것을 보완하는 타츠야와 동등한 수준의 인물이다. 물론 작중의 등장인물인 카자마 소령이 마사키는 타츠야에 비해 전력으로서의 격이 부족하다는 말도 하지만 말이다.

 위 장면은 타츠야가 재성(再成)이라는 고유 마법을 사용하는 장면이다. 이 마법은 대상이 되는 물체를 원자 단위로 복원시킨다는 설정으로 등장하는데,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마저도 24시간 이내라면 복원하는 엄청난 힘을 보여준다. 마사키의 허용범위를 초과한 마법 공격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타츠야가 이 마법을 통해 눈도 깜빡하기 전의 순간에 되살아나 마사키를 쓰러뜨리게 된다.(물론 공격한 마법은 플래시 캐스트라는 다른 마법이지만) 25화에서는 죽은 동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려내기도 한다. 이외에도 아무나 사용하지 못하는 강력한 마법을 다수 보유 및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전략을 수립하는 두뇌도 가히 천재적이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타츠야가 어째서 마사키에게 승산을 운운하며 초조해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지 좀처럼 납득하기가 힘들다.

 더불어 26화에서 타츠야의 동생인 시바 미유키가 이 마법을 사용하는데에는 죽은 사람이 느꼈던 고통을 일순간으로 압축한 형태로 느껴야만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마법을 사용한 타츠야가 그런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면 일순간이나마 일그러진 표정을 보여주어야만 보는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작중에서 타츠야의 그런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타츠야는 누가봐도 ①의 경우에 속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①의 경우에 있어서 가장 손쉽게 갈등을 유발하는 방법은 주인공에 비해 한참 약한 그의 가족이나 동료를 대상으로 주인공을 압박하거나, 아니면 주인공에게 물리적 또는 인과관계적 거리를 설정하여 그의 동료와 비슷한 수준의 상대가 별도의 장소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되는 재성 때문에 전자의 경우는 완전히 차단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주변 인물의 행동은 간간히 언급될 뿐이고 대부분 타츠야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는 고려할 실익이 거의 없다. 다만, 16화에서 타츠야와 함께 싸우는 동료인 사이죠 레온하르트나 요시다 미키히코의 모습만 봐도, 타츠야의 주변인물들은 적대적인 상대와 싸우기에 이미 충분히 강하다.

 

 

 

 타츠야가 재성을 사용하여 마사키에게서 역전?을 이뤄낸 모습을 구교전을 관람하던 모든 이들이 목격하는 장면이다. 사실 여기서의 일반적인 반응은 아마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놀라워하거나 의구심을 품는 등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먼저 사에구사 마유미의 반응인데, 그녀는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르겠다며 오히려 화를 내고 있다. 화를 낸다는 반응은 그녀가 타츠야의 기술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마유미가 거대한 고통을 압축적으로 느껴야만 하는 리스크를 가진 재성을 사용한 것을 알았다고 전제한다면, 그러한 고통스러운 기술을 써야만 했었다는 상황에 화를 낸다면, 마유미가 타츠야를 매우 소중이 여기고 있음을 강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도 1화부터 타츠야에게 관심을 보여왔던 마유미가 타츠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그러나 26화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마유미는 재성에 대한 기술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더라도 설득력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다만 이는 직접적인 언급이 아니었기 때문에 십사족 중의 한 명인 마유미가 재성과 같은 희귀한 마법에 대해 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마유미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의 반응인데, 그들은 매우 무덤덤하거나 또는 중압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물론 중간의 나카죠 아즈사는 상당히 걱정스러워 보이는 표정이다. 어떠한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이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으며 익숙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무지하여 인식조차도 못하고 있을 경우에 사람들은 완전히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두 반응은 완전히 양 극단의 위치한 범주의 것이다. 따라서 이것 또한 재성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의 여부에 따라 설명할 수 있는데, 알고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선 설명과 마찬가지로 26화를 보면 그들이 알고 있었다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이 부분의 서술은 생략하겠다. 반대로 그들이 몰랐다는 경우인데,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마법 지식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그들이 사람이 죽다 살아난 광경을 보고도 무덤덤하게 있다는 것 또한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 요코하마 소란 편에서 대아연합군이 침공하여 맞서 싸우는 장면에서 마법사들이 유사시에 군인에 준하는 활동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죽고 죽이는 것에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학교의 학생이 고작 마법 스포츠의 일종인 모놀리스 코드에서 생사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데도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그들 또한 타츠야처럼 일반적인 감정선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물론 작중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희로애락의 감정선을 보여주기 보다는 사무적인 어조로 설명을 하는 듯한 말투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고 보면 작중에서 풍부한 감정을 보여주는 이는 정말 드문 것 같다. 특히 표정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미유키랑 호노카 정도일까나?

 

 

 

 

 앞서 설명했듯이 재성이라는 타츠야의 고유 기술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엄청난 기억 용량을 차지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그가 작중에 등장하는 보통 마법사들과는 달리 일반적인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26화에서 미유키가 설명하는 부분이다. 물론 왼손으로 사용하는 재성뿐만 아니라, 오른손으로 사용하는 분해 마법도 있다. 어찌됐든 타츠야가 이런 엄청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타츠야는 일반적인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기억용량을 뇌에 할애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타츠야가 사용하는 마법의 수나 그 마법의 질을 생각하면 이러한 설명도 그다지 납득은 가지 않는다. 실제로 타츠야가 모놀리스 코드에 등장하면서 처음으로 선보인 마법을 무효화하는 최상급 마법 그램 데몰리션만 봐도, 미유키가 말한 설정이나, 또는 후지바야시 쿄코가 말하는 복잡한 마법식을 이미지 자체로서 그대로 기억한다는 말은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부류의 것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두 종류의 마법 때문에 기억용량이 부족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재성이나 분해 마법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 마법사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엄청난 마법을 머리로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니, 이러한 점은 스스로 모순점을 유발한다. 물론 필자는 작중에서 그렇다고 말하니깐,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냥 보고 있다. 그러는 것이 속편하고, 또 무뇌충처럼 봐야한다고 생각된다.

 애니메이션 상에서 가장 잘 표현한 것은 타츠야가 희로애락의 감정을 일관성 있게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성이나 분해 마법처럼 엄청난 마법을 보유함으로써 타츠야가 잃은 것이 일반적인 감정선이라는 것인데, 작중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고, 또 잘 표현하고 있다. 더불어 윤리적인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오로지 여동생인 미유키만을 생각하고 감싸고 도는 타츠야가 오로지 그녀에게만 약간의 희미한 미소를 몇 번 보여줄 뿐이라는 것 또한 이러한 부분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마법과고교의 열등생은 여러가지 개연성에서 의구심을 품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 작품만 그렇다라고 하는 것도 조금은 어폐가 있을 수 있다. 첨예한 갈등이나 점진적인 성장을 통한 달성감이나 긴장감 보다는, 정적이면서도 걱정없이 상대방을 압살하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나 망상을 대신 느끼게 해주는 그런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별생각없이 매우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 본문에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신뢰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명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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