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2017. 2. 2. 19:57미분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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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1. K의 일상

 

 평범한 중년의 남성 K는 자명종 소리와 함께 주말을 시작한다. 주요 내용은 K가 보내는 주말의 일과다. 이틀 남짓한 시간 동안의 K의 시점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서술된다. K의 시선에 비친 것들은 전부 일상적인 것들이다. 가령 잠에서 깬 내가 전날 자기 전에 머리맡에 두었던 스마트폰이 놓여 있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면, 내가 그것을 머리맡에 두고 잤었구나 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스마트폰을 그곳에 두지 않았더라도 별다른 의구심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K의 시선은 다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자기 자리에 존재하는 배란다의 화초를 보더라도 그는 온갖 의심을 품는다. 모든 것에 의심을 하고 이유를 찾는다.

 작중에서는 토요일 -> 일요일 -> 월요일 아침으로 시간적 전개가 이루어진다. 토요일의 K의 의식은 피곤할 정도의 의구심을 품는 전초전이었다면, 일요일은 극에 달한다. 줄거리 전체를 꿰뚫거나 굳이 상세하게 다 읽어보지 않더라도, 아내를 복제인간 또는 인조인간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행태만 봐도 능히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는 안심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K는 안심했다고 말하지만, 의심하기를 포기한 K가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억지스럽게 끼워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는다면, 그것은 본인에게 중대한 의미를 지닐 때일 것이다. 하지만 K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소한 모든 것들에서부터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깬 그 순간부터 그 자명종 소리마저 의심한다. 의심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듯이 점점 가지를 쳐나가며,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는 낯익은 악취와 나비 문신의 여인이다. K는 나비 문신의 여인이 그동안 자신이 마주쳤던 보험설계사, 대리운전 기사, 카페에서 마주친 여인, 춤추는 댄서, 아내 등으로 역할을 이어왔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유를 찾으려는 K의 행동은 정말이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2. 이미 그들은 내가 알던 그들이 아니다

 

 K는 딸까지 있는 중년의 남성이다. 의심을 거듭한 결과, 하룻밤 사이에 자신은 아내의 벌거벗은 몸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모순된 말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분명 생판 남인 타인이다. 하지만 K는 왠지모를 익숙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인식은 나비 문신의 여인이 번갈아가며 승계했다는 점이 겹쳐져 모든 이들에게서 미약한 익숙함을 느끼게 만든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연인 중의 여자가 해외로 신혼여행 중인 자신의 처제로 보였고, 그녀가 밀입국하여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K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돼 버리고 불안에 빠지게 된다.

 반대로 익히 잘 아는 친숙한 사람들에게서는 낯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친누이 JS의 집에 간 K가 자신의 상처를 빠는 누이의 모습을 보고는 발기해버리는 것도 그 일환이다. 머리로는 누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더 이상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누이가 아니다. K는 무의식으로부터 모든 이들에게서 생소함을 느끼고 있다. 더불어 누이에게 발기한 자신에게 모멸감을 느낄새도 없이 나비 문신의 여인은 끊임없이 K를 괴롭힌다.

 의구심의 연속으로 인해 모순된 결과에 빠진 K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굴레에서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납득이 되질 않는 해석은 의구심을 유발하고, 의심을 통해 재해석된 결과는 계속해서 모순만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결국 K는 자신이 속한 세계뿐만 아니라 본인마저 의심하기 시작한다. 복제인간과 바꿔치기 당한 자신에 의해 치밀하게 꾸며진 음모는 K가 그 어느 것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K는 고독감에 빠졌고,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폭탄 자살 테러 같은 사건은 정말 사소한 것이 되어버렸다.

 

 

3. 인식

 

 K는 그저 제멋대로 생각할 뿐이다. 스스로가 현실과 망상을 구분짓지 못하고, 머리로 생각한 것을 모두 현실에 투영한다. 모호한 경계는 감각을 무디게 이끌며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기존의 정형화된 패턴대로 움직임으로서 본인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강한 주관이 반영된 K의 세계는 그를 더욱 깊고 어두운 구멍으로 떨어뜨릴 뿐이다.

 그는 끊임없이 외적인 것에 의구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본능적인 것에는 전혀 의심을 품지 않는다. 요의를 느끼면 화장실에 가고, 음식 냄새가 나면 아내가 밥을 한다고 판단하고는 부엌에서 밥을 먹는다.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K는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 K는 마치 비정상적인 것처럼 설정되어 있지만, 이러한 K의 모습은 매우 정상적인 사람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최대한 자신의 입장에 맞도록 해석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이 소망하는 바대로 변화가 일어나주길 바라고 전제해 버린다. 그리고 선택을 함에 있어서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있어서 차선책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은 본인의 의지로 최선의 결과라고 믿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임을 강조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좀 더 자신에게 의심을 품는 것, 다시 말해 현상이나 결과의 이유를 모두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 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K의 경우는 너무 극단적일뿐, 그러나 그저 범인(凡人)인 나에게 있어서는 외적 요소에 부정적인 의미를 설정하고 그들을 탓하는 것에서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본인의 잘못을 알고 깨우친다는 용기란 내게 없는 것이며, 그런 미숙한 부분을 고친다는 것은 마치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는 느낌이 들어 그다지 와닿지 않는 부분이다. 자신의 글러먹은 점조차도 사랑한다는 것,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사람이라면 분명 동조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의구심과 모순의 연속, 그리고 현실의 왜곡

 

 K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온 메시지, 성인방을 광고하는 전화번호에 이끌려 간다. 침묵 속에서 낯익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껴안고 키스하고 섹스하는 장소에서 달의 요정 세일러 문 만화책을 발견한다. 관심이 없던 K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매춘을 하러 온 여성에게 무의식적으로 세일러 문의 코스튬 플레이를 요구하고, 그녀에 의해 엉겹결에 자신은 레온이 된다. K는 매춘을 하러 온 여성의 가슴을 주무르고는 그녀의 유방이 성형을 통해 실리콘을 넣은 것이라 판단했다. 그 결과 K는 그녀를 정교하게 제작된 고무인형 또는 리얼돌이라 판단하고는 실로 가벼운 스킨쉽만을 하고 그곳을 나왔다. 그녀를 마치 피노키오와 같은 추상적인 존재라고 인식했고, 성적으로 접촉하려면 만화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K는 마치 논리적으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 바탕은 온갖 망상으로 가득하다. 이런 K의 눈에 비친 세계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뒤틀리고 왜곡된 가상현실에 불과하다.

 K 본인이 JS에게 300만원을 꿔달라고 쓴 편지를 읽고 나서부터 현실에 대한 믿음을 잃은 K는 편지의 내용을 부정하며 K1과 K2로 분리되었다. K1은 기존의 K였다면, K2는 K1의 의식을 이어온 새로운 K이다. K2를 새롭다고 표현했지만 새롭지는 않다. K2는 그동안 K1이 겪었던 일들을 집약한 결정체와 같다. 망상이 극에 달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창가를 지나는 K2가 성인방에서 수많은 망상을 통해 얻어낸 결과만을 즉시 도입하여 유혹하는 매춘부들을 그저 풍경화의 일부라 판단할 뿐이다.

 K2는 사창가에서 향단이 -> 월매 -> 월매의 어머니 -> 파워레인저 순으로 찾는 대상을 변화시킨다. 시각과 청각조차도도 왜곡되어 낯익은 느낌이 드는 상대방은 월매, 레인저 같은 가공이 인물로 비춰진다. 대화로 오고 가는 소리조차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K2는 레인저가 되고, 레인저는 K2가 된다. 망상의 주체와 망상의 대상이 일체화되는 순간이다.

 K1와 K2는 서로 대화를 나눈다. 서로가 서로를 K라 주장한다. 생년월일이나 키, 몸무게, 이름 등을 똑같이 대며 모습도 똑같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하다. 아니 거울을 보고 있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문을 읽으면서, 일개 독자일뿐인 나조차도 점점 서술자인 K의 말 자체가 의심스럽다. 나도 K가 된 듯한 기묘한 기분에 휩싸이면서 또한 난해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K는 레인저와 대화한다. K는 레인저다. 그러므로 K는 K와 대화한다. K는 어릴적 동경했던 레인저와 가위바위보를 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새긴다. 전과 5범의 건달이지만, 아내 YH와 열 살짜리 딸 MS가 있는 K. 어린 시절 술만 먹었다하면 어머니를 때렸던 K의 아버지. K의 무한한 의심을 통해 마침내 도달한 곳은 지금까지 의심와 두려움에 둘러쌓여 있던 K는 레인저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더 이상 K에게는 어떤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된다.

 절정 부분은 마치 지금까지 겪어온 K의 내적 갈등이 해소된 것처럼 비추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저 도피할 수단 한 가지를 발견했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연극이다. K는 일정한 패턴으로 현실을 연극해 나가면서 외적으로 인식되는 것들을 무의식으로 차단한다. 망상이 사리진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고독해 보인다. 마치 아름다운 현실 도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5. 시뮬레이션 연극

 

 집으로 돌아온 K는 평범한 가장으로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니 흉내내기 시작한다. 마치 잃어버린 반쪽을 되찾았다는 듯이.

 월요일 아침, K는 늘 그래왔던 패턴으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익숙한 아내의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난다. 어제 저녁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아내의 말에도 K는 대수롭지 않게 출근 준비를 한다. 스스로를 명배우라 자칭하며 자랑스러워 한다. 출근하는 K는 지하철에서 익숙한 악취를 맡는다. 연이어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비 문신의 여인, 보험설계사, 대리운전 기사, 카페에서 마주친 여인, 춤추는 댄서, 누이인 JS, 군복을 입은 아버지가 연이어 보인다.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 엄마를 외치며 붙잡아보려 하지만 그저 영상에 불과한 홀로그램처럼 흐릿해진다.

 지진에 휘말려 쓰러진 K의 귀에는 세일러 문 주제가가 들려온다. 사고가 난 와중에도 다음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안내문이 점등하고 있다. 의아해 할 여유도 없이, 마법의 봉이 철로 밑에 깔려 곤란해 하고 있는 세일러 문에게 K는 도망치라고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듣지 않는다. K는 어느새 레온이 되어 있다. 하지만 K는 힘이 없다. 그런 K에게 다가온 레인저, 즉 K1은 아직 완전해지지 못한 K2와 합체하여 힘을 부여했다. 결합을 통해 온전한 자신이 된 K는 태초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결말 부분은 매우 난해하다. 처음부터 K의 망상이었다고 치부해 버린다면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K와 같이 부질없이 의미부여를 해보려 노력한다면,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아직 난 그 의미를 찾지 못했다. 훗날, 은 중에 그 의미를 찾아낼지도 모르겠지만, 편리한 자습서 같은 것도 없는 지금에서는 그것에 대해 도저히 알 길이 없다.

 

 

6. 고통의 축제

 

 작가는 이 글을 두 달만에 썼다고 한다. 마치 누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쓰듯이 이어나갔으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자신에게 스스로도 불가사의함을 느꼈다고 한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글을 써야한다는 고통을, K는 의심한다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고통을 잊어가면서 한 편을 글을 완성하고, 과거 자신이 잊었던 것을 되찾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나 역시도 고통이었다. 원래 생소한 내용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성가신 일이다. 익숙한 내용을 읽는다면, 그것은 물 흐르듯이 읽히겠지만, 낯선 지문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난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언젠가 스스로 정답을 발견하거나 저절로 이해하게 되기를, 아니면 뜬금없이 누군가가 다시 정정하며 알려주기를 기대하며 이 난해한 글을 덮어 본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국내도서
저자 : 최인호
출판 : 여백 201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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